"그래, 알겠어. 동생이 많이 보고 싶겠지. 걱정하지마, 보스. 동생은 아마 잘 지내고 있을 거야. 몇년 전부터 난 괜찮은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보스의 고모부한테 넘겨줬거든."
도정문은 마치 칭찬을 기다리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임서현과 그녀의 여동생인 임서윤은 6살 때 부모님을 잃은 후 고모인 임수연의 손에서 길러졌었다.
임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자신의 벚꽃 무늬가 새겨진 팬던트를 열었고 안에는 그녀와 여동생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 임서현은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반면 임서윤은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고 있던 임서현도 저도 모르게 입 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후, 그녀와 임서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왔고 그녀의 동생 임서윤은 주위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마치 따스한 햇살 같은 존재였다.
열두 살 때, 임서현은 나라의 눈에 들어 기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7년을 보냈고, 프로젝트가 드디어 마무리 된 지금, 그녀는 그제서야 집에 돌아와 여동생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가에서 받은 돈 대부분을 서윤이한테 보냈으니 지금쯤 서윤이는 분명히 잘 지내고 있겠지?'
한편, 임서현의 입술이 그려낸 곡선을 발견한 도정문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세상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차도녀가 웃고 있다니.'
도정문도 덩달아 임서윤을 만나보고 싶었다.
차는 마침내 단지 입구에 도착했다. 집집마다 정원이 딸려 있는 꽤 고급스러운 단지였다.
이 저택은 임서현의 부모님이 남겨준 유산으로, 지금은 고모와 여동생이 살고 있다.
사전에 등기되지 않은 차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임서현은 굳이 경비를 난처하게 하지 않고 차에서 내려 단지 안으로 걸어갔다.
한편, 집 대문 앞은 불빛이 환한데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보아하니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군.'
이런 생각에 임서현은 미소를 지으며 마당 안으로 들어서던 그때, 마당 한쪽에 있는 개 집이 눈에 들어왔다.
예리한 눈초리로 임서현은 그 안에 사람이 들어 있음을 발견했다.
어두운 나머지 비록 그 사람의 얼굴은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개 집에 있는 사람이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 쯤은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사람이 어째서 개집에 있는 거지?'
임서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상대방은 깜짝 놀란 듯 다급히 개 집 안으로 몸을 숨겼다.
임서현은 더욱 의아해졌다.
바로 그 순간, 안에서 가늘고 나약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발 더는 때리지 마세요. 저, 다시는 실수 안 할게요. 더 조심할게요..."
'이 목소린... 설마, 임서윤?!'
임서현은 두 눈이 휘둥그래져 마치 당장이라도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곧바로 안에 있는 사람을 끌어냈다. 가까이서 보니, 어두운 불빛 속에서도 소녀의 얼굴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임서현의 동생, 임서윤이었다.
"어..."
임서윤 역시 눈앞의 사람이 어쩐지 익숙하다고 느꼈는지 그저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감히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윤아, 너 맞지."
임서현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치 칼날처럼 그녀의 심장을 베어 갔다.
임서윤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임서현의 눈에는 차디 찬 기운이 가득 차 있었고 그 눈빛에 담긴 살기는 마치 도시 전체를 초토화 시킬 것만 같았다.
"언니..."
임서윤은 믿기지 않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정말, 정말 돌아온 거야?"
임서윤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임서윤의 상태가 이상함을 눈치챈 임서현은 걱정스레 그녀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
동생의 이마에서 전해지는 고열이 고스란히 느껴지던 그때, 임서윤이 그녀의 품에 풀썩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이마가 끔찍할 정도로 뜨거운데 비해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순간, 임서현의 마음도 함께 얼어붙고 말았다.
바로 그때, 저택의 문이 열렸다.
"임서윤, 이 느려터진 년아! 몇 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못 먹었어? 어서 들어와서 설거지 안 해?"
밖으로 나온 이는 바로 그녀의 고모인 임수연이었다.
그녀는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었다.
그 소리에 임서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임수연을 바라보았다.
고작 몇 년 사이, 예전에는 초라하고 수척했던 고모가 눈부시게 달라져 있었다.
값비싼 외투를 걸치고, 비취 장신구를 두른 모습은 아주 우아하고 화려해 보였다.
임수연은 임서현의 싸늘한 눈빛에 지레 겁을 먹은 나머지 몸을 떨었다.
"너... 서현이야? 너 언제 돌아온 거야?"
"당신들, 서윤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임서현은 임수연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마치 저승사자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임수연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쳤다. 그녀는 임서현의 눈빛 속의 서늘한 살기에 깜짝 놀라 겁을 먹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아무리 해 봐야 고작 열 몇 살 짜리 꼬맹이일 뿐이잖아?'
임수연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저 년이 그릇을 깨뜨려서 내가 벌을 준 거야. 네가 집에 없는 동안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해? 그래도 난 서윤이 밥은 굶기지 않았어. 따뜻한 곳에서 재워주기도 했지. 네가 내 오빠 딸이 아니었으면 난 너희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거야."
바로 그때, 임서현은 임수연의 목을 거칠게 꽉 움켜쥐었다.
이내 차갑고도 얼음장 같은 얼굴이 눈앞에 다가오자 임수연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너... 이거 놔..."
임서현은 살얼음 같은 표정으로 당장이라도 살기가 터져 나올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는 내 집이야. 그런데 당신이 감히 내 동생에게 설거지를 시켜? 그것도 모자라서 내 동생을 개 집에서 재우다니? 정말 죽고 싶은 거지?"
열린 문틈으로 흘러 나온 불빛으로 임서현은 동생이 먹고 있던 음식이 무엇인지 그제서야 확인 할 수 있었다.
사람이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아예 들지 않는 비주얼, 개에게 주어도 먹지 않을 그런 음식인 것이다.
게다가 임서현의 품에 안긴 임서윤은 종잇장처럼 가벼웠고, 얼굴은 초췌하고 핏기 없이 수척했다.
그 순간, 임서현의 심장은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듯 고통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녀가 보물처럼 아끼던 여동생이, 이런 대접을 받고 있었다니...
"임수연. 당시 널 저택에 들일 때, 넌 분명히 약속했었지. 내 동생을 잘 돌보겠다고 말이야."
임서현의 눈빛에선 여전히 살기가 어른거렸다.
하지만 임수연은 어린 년이 자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반말을 지껄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내 서슬퍼런 임서현의 눈빛을 마주하자 이내 주눅이 들어버렸다.
임서현은 어릴 적부터 성격이 괴팍하고 차가웠으며 사리분별이 확실했다.
하여 그녀가 집에 있던 그 몇년 간, 임수연은 잠자코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지내며 그나마 고모로서의 책임을 이행했다.
그런데 갑자기 임서현이 집을 떠나고 나자 집에는 성격이 유한 임서윤만 남게 되었고 임수연은 점차 이 저택의 자신의 집이라 여기며 임서윤을 밖에 내 쫓은 것이다.
그런데 임서현이 이렇게 다시 돌아올 줄이야?
"난 분명히 잘 돌봤어.
서윤이가 잘못을 저질렀길래 벌을 좀 준 게 뭐가 잘못됐다고 그래? 윽."
임수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숨이 막혀왔다. 임서현이 손에 힘을 준 것이다. 그 순간, 임수연은 마치 저승사자가 자신을 향해 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임서현?"
집안에 있던 사람들이 문 밖의 소란 소리를 듣게 되었고 모두 문 어구로 시선을 돌렸다.
으리으리하게 인테리어 되어있는 저택,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는 식탁, 그리고 하나 같이 값비싼 명품을 몸에 두르고 있는 사람들이 임서현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정작 동생 임서윤은 개 밥 보다도 못한 쓰레기를 먹고 있다니!
그 생각이 스치자 임서현의 눈가가 빨갛게 물들었다.